대위기

3월 중순부터 프리랜서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쳤었다. 어쩌다 보니 40k 이상 작업이 세 개 겹쳤는데, 마감이 모두 3월 중순께였던 것... 번역뿐만 아니라 꽤 큰 교정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 중이었기에 대위기.

위기를 타개하고자, 요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호 사무실 임대 서비스로 1인실을 빌렸다.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면 시간을 하루에 두 시간은 절약할 수 있다는 계산 하에...

한 층 전체가 여러 개의 사무실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사무실을 따로 임대하는 시스템이다. 임대료가 싸다고 할 순 없지만, 정해진 임대료 외에 관리비 등이 따로 들지 않아서 좋다. 무선, 유선 인터넷은 무료고 회의실과 프린터, 간이 카페는 함께 이용할 수 있다. 공간 자체에는 지문으로 출입해야 하고, 사무실에는 도어록도 있어서 웬만한 원룸보다는 보안이 훌륭하다. 물론 사무 공간인지라 욕실이나 주방은 없지만, 샤워는 필라테스 센터에서 하는 걸로 해결한다는 계획.

사무실 자체는 정말 손바닥만 해서, 책상과 라꾸라꾸를 들이니 공간이 거의 남지 않는다. 그래도 일에 집중하기 위한 용도로는 적합하다.

델 XPS 13 9350에 모니터를 하나 연결해 세팅을 마친 모습. 집에서는 24인치 듀얼 모니터를 사용하는데, 이 정도 세팅도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약 2주간 사무실에서 생활하면서 일할 각오를 다졌는데, 허무하게도 입주 다음 날 60k짜리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프로젝트 전격 취소는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해야 하나...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취소됐다면 황망했겠지만, 다른 것 쳐내느라 거의 손도 못 대고 있던 터라 기쁨이 더 컸다.

그 결과 몸은 갑자기 한가해졌지만 마음고생 하는 동안 정신이 왠지 피폐해져 버려서, 지난주부터는 왠지 자포자기 모드. 만사가 귀찮고 그냥 집에 일찍 가서 뒹구는 게 제일 좋다...

어쨌든 대형 번역 작업은 이제 모두 마쳤고, 주말에 교정 작업 마치고 나면 다음 주부터는 다시 평소 일정으로 돌아갈 듯.

결과적으로는 장기 프로젝트보다는 차라리 단기 프로젝트가 정신 건강에 좋은 듯도 하다. 장기 프로젝트 중간에 단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거절하기 어려워서 받고 또 받다 보면, 막판에 장기 프로젝트를 막느라 마구 몰아치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니 새삼 고민이 많아지지만, 정작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